대학교 때, 홍대 근처에 작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면 '수안라'라는 가게가 있었다. 그 가게를 알게된 것은 그 당시 한창 뜨고 있던 소셜 커머스에 올라온 것을 보고, 항상 맛있는 것에 목말라있던 나와 단짝 친구와 나는 여기다 싶어서 방문하게 되었고 역시나 마음에 쏙 들었다.
그 가게는 '쏼라펀'이라는 다소 생소한 주력 메뉴가 있었는데 그게 참 별미였다. 시큼하고 얼큰한 맛이나는 탄탄멘의 그것과 비슷한 국물에, 고기 볶은것, 고수와 볶은 땅콩 등이 올라간 뜨끈한 중국식 국수였는데 향신료에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할만한 국수 한그릇이였다.
그 가게는 모든 좌석이 다찌(bar)로 되어있고 그 다찌 안에 오픈 키친이 있어 내가 먹을 요리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설레는 마음으로 관찰할 수 있었고, 그만큼 깨끗하고 정갈했다. 가게의 주인인 오빠? 혹은 삼촌뻘의 젊은 남자와 그의 아버지쯤되는 주방 보조가 맞아주었다. 몇번의 방문끝에 그 주인이 중국에 갔을 당시 직접 배워온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넉살이 좋고 다가가기 쉬운 인상을 가진 분이라 당시 낯을 많이 가리던 나도 경계를 풀고 편안히 있을 수 있었다.
가장 중요한 음식! 쏼라펀은 묘한 중독성을 가진 국수였다. 5년정도 지난 아직도 생각이 가끔 나는것을 보면 참 맛있게 먹었나보다. 코와 볼이 빨갛게 될 정도로 추운날, 여느때처럼 수업을 대충 마치고 달려와 칭따오 한잔, 튀긴 꽃빵에 연유를 찍어먹고 있으면 김이 모락모락하여 내 앞에 주어지는 그 쏼라펀 한 그릇이 그렇게나 좋았다. 어디서도 맛보지 못한 오묘한 맛이, 자꾸만 입에 맴돌았다.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가 아니고 그 맛 자체가 독특했다. 주인은 개점 후에 여러가지 신메뉴를 내놓았으나 딱히 기억에 남을건 없었고 그저 그 쏼라펀 한 그릇이 으뜸이었다.
불행하게도 졸업 전의 어느날 꽤나 오랜만에 가보니 그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속상할 정도로 아쉬웠다. 왜냐하면 내가 아는 한 그 메뉴는 거기서 밖에 먹을 수 없었고 하필이면 그게 참 맛있었기 때문이다. 별거아닌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 푸근한 주인오빠도 만날 수 없거니와, 그 가게가 없어짐과 동시에 쏼라펀은 나에게 봉황과 같은 존재가 되버린 것이다.
아직도 그 가게를 찾았던 그 친구와 나는 그 가게 주인을 찾을 수 없을까? 하며 아쉬워한다.
오늘은 회사 근처에 가장 좋아하는 술집에 갔었다. 통유리에 경치가 좋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흔한 메뉴를 팔아도 거기서 먹으면 더 맛있었다. 짐작컨데 음식을 하는 사장님이 내공이 있는 분이었다. 회사 동기들 모두 약간의 충성심과 같은 마음으로 그곳을 좋아했기에 나만의 착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간 그 가게는 같은 메뉴를 내놓아도 전혀 다른 음식이 나왔다.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메뉴의 음식을 먹어도 그 가게는 그 가게가 아니었다. 계기는 별것이 아니었다. 항상 짜파게티에 올라가던 계란 후라이는 정성스럽게 만든 반숙이었는데, 오늘 그 계란은 반숙도 완숙도 아닌 요상한 것이었다. 다른 음식들도 그런 식으로 마찬가지였다. 그럴리가 없는데. 크게 실망스러웠다. 계산하는 길에 물어보니 얼마전 주인이 바뀌어, 더 이상 내가 아끼던 그 가게가 아니게 된것이었다.
집에 오는 길 내내 아쉬워하며, 과거의 수안라가 생각났다. 내가 더 자주갔다면 그 가게가 아직 그대로였을까.. 하면서 말이다. 사실 내가 해줄수 있는거라고는 고작 더 자주 가서 매상정도 올려주는 것이었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 가게에 애정을 갖고 꾸려나가던 사람들은 알까? 누군가가 친한 친구를 잃은것마냥 아쉬워한다는 걸. 그게 뭐라고 그렇게 아쉬워하니. 주변 사람들이 비웃을까봐 겉으론 내색하지 않아도, 나는 자꾸 생각하고 계속 아쉬워할 것 같다. 추운 날의 수안라를, 퇴근 후의 그 술집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가게는 더 이상 거기 없지만, 그래도 음식과 장소가 만들어 준 추억에 감사하고 있고 또 그 장소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당신만큼 누군가도 속상해 한다는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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