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시작은 대략 이렇다
나도 크리스마스 이브에,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누군가를 만날 계획은 있었다. 나름 설렜고 기대됐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전까진...

이브 전날 밤부터 온몸이 불타는 감자(?)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고
이브 아침에도 여전히 침 삼키는 것 조차 힘들었고 열은 여전했다.
좀처럼 아프지 않은 튼튼한 나여서 시간이 병을 가져가주리라 믿었는데
오빠와의 통화에서 '신종플루일 수도 있으니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들었고
병원에서 역겨운 검사(정말 눈물이 줄줄 나는)를 통해 신종플루라는 진단을 받고서야
'아 요번 연말은 참으로도 즐겁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털웃음이 났다.



쨌든 집으로 가야했기 때문에 엄마께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을 드렸고 엄마는 나와 함께 집으로 가는 내내 -안그래도 이브여서 차가 엄청나게 막히는데- 잔소리 폭탄을 놓으셨다.

여기까지가 이브의 이야기고
집에 온 나는 화장실 가는 일 외에는 방안에 짱박혀서 엄마가 간간히 넣어주는 일회용 용기에 담긴 사식(?)을 
먹으며 오늘 날씨가 어떤지도 모른채 히키코모리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오늘 내가 한 일을 굳이 따져보자면

유희열의 스케치북 크리스마스 특집 '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
SATC 에피소드 4편
Friends 에피소드 4편 복습
드라마 한 편

을 보았다. (하루 안에 볼 수 있다. 눈이 빠져서 그렇지.)
심지어  책도 틈틈이 읽었다.
(잠시 딴 길로 새자면, 옛날에는 도통 안읽히던 책이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흥미롭게 읽히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그 시간 동안 나에게 조금이라도, 어떤 방향으로라도 변화가 있었다는 거니까.)
지금 식구들과 손님 한 명은 내 방문 바로 앞의 식탁에서 카드놀이를 즐겁게 하고 있다. 문 하나의 벽은 실로 높다. 으악. 내 연말이 이렇게 지나가는 구나.
다른 이들에게는 메리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를 외치면서도 정작 내 자신이 그렇지 못하다는 거에 대해서, 그것도 정말 예상치 못했던 질병으로 인해 다 무너져버린거에 대해서 씁쓸해진다.

양식스타일(?)의 엄마표 사식. 통조림 클램챠우더와 이것저것 끼워넣은 잉글리시 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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